한반도 전기 고생대 층서명의 지역화와 보편화: 조선계(Chosen System)에서 조선누층군(Joseon Supergroup)으로
Localization and Universalization of Early Paleozoic Stratigraphy on the Korean Peninsula: From the Chosen System to the Joseon Supergroup
1 전북대학교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K-학술확산연구센터 Jeonbuk National University
DOI: https://doi.org/10.36092/KJHS.2026.48.1.1
Abstract
Modern geological research on the Korean Peninsula was conducted by Japanese geologist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ese researchers mapped the peninsula’s geological structure, identifying and naming various strata and rock units. However, in this process, Japanese scholars often ignored local names in favor of Japanese pronunciations. Furthermore, they grouped the Cambrian and the Ordovician strata – despite their distinct depositional times – into a single chronostratigraphic unit, “System.” This paper examines the transition of Early Paleozoic nomenclature from the "Chosen System" to the "Joseon Supergroup" as led by Korean geologists between the mid-1950s and early 1980s. This was a process of changing English regional names that had been pronounced in the Japanese way into Korean regional names, and at the same time, it was a process of systematizing and universalizing the unit called ‘System’ in accordance with the international standard of ‘Supergroup.’ This paper shows that the renaming and reclassifying the Chosen System into the internationally standardized Joseon Supergroup was a unique process that simultaneously restored locality and universality.
본 논문은 2023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학진흥사업단)을 통해 K학술확산연구소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AKS-2023-KDA-1250001).
1. 들어가며
한반도 지질에 관한 근대적 연구는 일제강점기(1910-1945) 전후 일본 지질학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 과정에서 제국 일본이 주도한 만한이원조사(滿韓利源調査), 조선광상조사사업(朝鮮鑛床調査事業), 탄전 조사사업 등은 일본인 지질학자들이 한반도의 암상이나 화석을 분석할 수 있는 물적 기반을 제공했으며, 조선총독부지질조사소(朝鮮總督府地質調査所, 1918-1945)와 조선총독부연료선광연구소(朝鮮總督府燃料選鑛硏究所, 1922-1945)는 지질학자들의 연구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었다. 한반도 지형ㆍ지질에 관한 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郞, 1856-1935)의 선구적 연구로부터 시작된 일본 지질학자들의 한반도 지질연구는 그의 도쿄제국대학 지질학과 제자들인 야베 히사카츠(矢部長克, 1878-1969), 이노우에 기노스케(井上禧之助, 1873-1947), 가와사키 시게타로(川崎繁太郞, 1878-1940), 나카무라 신타로(中村新太郞, 1881-1941), 다테이와 이와오(立岩巖, 1894-1982), 고바야시 데이이치(小林貞一, 1901-1996) 등으로 이어졌고, 이들은 시ㆍ원생대로부터 신생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지질계통 수립에 크게 공헌했다.
일본 지질학자들은 한반도의 지질을 조사하고 지질계통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발견한 지층이나 암석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 나갔다. 지층명(地層名, Stratigraphic Name)을 정할 때는 동ㆍ식물을 명명할 때와 마찬가지로 이명법을 따르는데, 공식적인 지층명은 지명(地名, Geographic Name)과 층서 단위(層序 單位, Stratigraphic Unit)를 나란히 쓴다. 지명은 지층이 처음 정의된 지역 또는 지층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는 지역의 이름을 사용하며, 층서 단위로는 암석 유형, 대표 화석, 지층이 퇴적된 연대(시간)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평안남도 중화군 상원에서 발견된 원생대 지층은 상원계(祥原系)라고 명명되었는데, 이는 지층이 발견된 지명인 상원(祥原) 뒤에 시간 단위인 계(系)를 붙인 이름이다.1
해방 이후 한반도 지질 연구의 새로운 주체가 된 한국의 지질학자들은 일제강점기 동안 이루어진 일본 지질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검토했고, 일본 지질학자들이 부여한 지층명에서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을 발견했다. 첫째, 한반도 지질을 연구한 일본인 지질학자들은 논문을 영어로 발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이 한반도의 지층명을 표기할 때 한자명 뒤에 조선어 지역명이 아니라 일본어 발음을 덧붙였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앞의 상원계 지층을 지역명 그대로 로마자로 표기하면 Sangwon System이 되지만, 일본인 지질학자들은 한자명 뒤에 일본식 발음으로 Shogen System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또, 한반도에 있는 후기 고생대 지층을 평안계(平安系)라고 명명하면서, 일본 지질학자들은 이 지층명을 Heian System이라는 일본식 발음으로 기재하였다. 일본 지질학자들의 명명에서 드러나는 두 번째 문제는 통(統, Series)과 계(系, System), 층(層, Formation)과 같은 층서 단위를 일정한 기준 없이 혼용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고생대 캄브리아기에 퇴적된 지층과 오르도비스기에 퇴적된 지층을 하나로 합쳐 ‘계’라는 시간 단위를 붙인 점이었다.
자연물의 명명에 관한 그동안의 과학사 연구는 세계 각 지역에서 사용하던 지역명 대신 보편적으로 라틴어를 부여한 린네식 학명에 관한 비판적 연구가 다수를 차지한다. 예를 들어, 린네 분류체계와 이명법의 확산을 당시 유럽의 팽창과 연결 지어 분석한 메리 루이스 프랫은 지구상의 생명체들이 그들을 둘러싼 환경, 즉 생태적이고 유기적이고 경험적인 관계로부터 추출된 후 유럽에 기반을 둔 새로운 전 지구적 질서 속에 재편되어 들어갔다고 해석했다. 프랫은 그러한 재배치는 새로 만들어진 자연의 체계를 제국적 표현들과 철저히 분리하는 반정복(反征服)의 서사를 통해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론다 쉬빙어도 라틴어를 매개로 형성된 새로운 전 지구적 자연의 체계를 언어 제국주의(linguistic imperialism)라는 말로 비판한 바 있다. 과학사학자 이정은 일본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 1882-1952)의 조선 식물연구를 분석하여, 그것이 제국의 확장이라는 환경 속에서 서구적 분류법을 수용해 중심부 과학의 보편성을 담보하기 위한 활동이었으면서, 동시에 미세한 차이에 집중하는 세분론적인 분류 방법을 이용해 조선 식물들의 특성을 드러내고 신종으로 분류·명명함으로써 일본을 새로운 근대적 식물 연구의 중심지로 이끈 정치적 활동이었음을 보여주었다.2
본 논문에서는 자연물 명명 중에서도 일본식 발음으로 기재된 지층명 및 층서 단위 혼용에 대한 비판을 시작으로 한국의 지질학자들이 어떻게 국제 국제명명규약에 맞는 새로운 용어를 도입했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특히, 본 논문은 1920년대에 일본인들이 조선계(朝鮮系, Chosen System)3라고 명명했던 지층명을 분석 대상으로 한다. 한반도의 전기 고생대 지층을 의미하는 조선계는 평남 분지와 태백산 분지에 분포하고 있는데, 이 두 지역은 여러 탄전이 모여 있어 일제강점기 동안 지질ㆍ광상 조사사업의 중요 대상이 되었으며, 층서 연구 또한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지역이었다. 자원 조사라는 실용적 목표와 지질계통 연구라는 학문적 목표가 결합해 탄생한 이 지층의 이름이 조선누층군(朝鮮累層群, Joseon Supergroup)으로 바뀌는 과정으로 분석 대상을 좁힘으로써 본 논문은 명명을 둘러싼 사회적ㆍ역사적 맥락을 드러냄과 동시에, 이러한 명명 변경이 해방 이후 한국의 지질학 연구에서 가지는 의미를 명확히 드러내 보고자 한다.4
특히, 조선계의 ‘계’가 ‘누층군’으로 개칭되는 데는 1970년대에 국제 층서 구분 지침 제정 및 출판을 둘러싸고 형성된 다국적 연구 네트워크와의 연결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한국의 과학자들이 해방 이후 새롭게 형성된 연구 네트워크를 통해 과학적 지식을 생산하는 과정을 보여준 연구로는 현재환, 김근배, 신미영, 그리고 원정현의 연구 등이 있다. 현재환은 한국인에 관한 유전체 연구가 정치ㆍ사회적 변화와 맺는 관계를 초국적 과학 네트워크 변화를 중심으로 분석한 바 있고, 김근배와 신미영도 이호왕의 한탄 바이러스 발견 과정을 미네소타 프로젝트로 형성된 새로운 연구 네트워크와 관련지어 분석하였다. 원정현도 코노돈트 화석을 매개로 형성된 연구 네트워크를 통해 1980년대 초에 한국인 지질학자들이 새로운 지질학 지식을 발견하는 과정을 보여준 바 있다. 본 논문은 이러한 연구들을 계승하면서 한국의 지질학자들이 국제 층서 구분 지침 제정을 위해 새롭게 형성된 연구 네트워크에 결합하는 양상 및 그 결과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과정을 보여준다.5
지층명을 공식화하는 기관은 국제지질연맹(IUGS, International Union of Geological Sciences) 산하 국제층서위원회(ICS, International Commission on Stratigraphy)이다. 국제층서위원회가 지층명을 정하는 기준에 의하면, 지층명의 지리적 구성 요소, 즉 지명의 철자는 원산지 국가의 사용법을 따라야 한다.6 한국인 지질학자들이 조선계라는 지층명을 조선누층군으로 바꾸는 과정은 Chosen을 Joseon으로, 계(System)를 누층군(Supergroup)으로 바꾸는 과정이었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식 발음으로 병기되었던 영어 지층명을 한국식 발음으로 바꾸는 것이었음과 동시에 서로 다른 지질시대인 캄브리아기와 오르도비스기에 퇴적된 지층을 합쳐서 ‘계’라고 부른 데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국제 명명 기준에 맞춰 ‘계’를 ‘누층군’으로 새롭게 명명하는 과정이었다. 즉, 그것은 지역명을 회복하는 과정이면서 국제적 지질학 질서 편입을 통해 지층명의 보편성을 획득하는 과정, 다시 말해 지역성과 보편성을 모두 회복하는 독특한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2. 조선계의 명명과 수용
한반도에 전기 고생대 지층이 분포한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한 지질학자는 독일의 지질학자 카를 곳체(Carl C. Gottsche, 1855-1909)였다. 1877년 일본 최초의 제국대학인 도쿄제국대학교 이학부에 일본 최초의 지질학ㆍ채광학과가 설립되었을 때, 이 학과의 교수진은 모두 독일인으로 채워졌다. 당시까지 일본에는 전문적으로 교육받은 지질학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독일 킬대학교(Christian-Albrechis-Universität zu Kiel) 교수였던 곳체는 1882년부터 1884년까지 이곳에서 강사로 재직하면서 광물학과 지질학을 가르쳤다. 1884년 곳체는 조선의 외교ㆍ통상 사무를 맡아보던 통리아문(統理衙門)의 협판이자 자신과 같은 고향 출신이었던 파울 게오르크 폰 묄렌도르프(Paul Georg von Möllendorff, 1847-1901)의 요청으로 4월부터 12월까지 약 8개월간 한국의 여러 지역을 두루 답사할 기회를 얻었다. 도쿄제국대학과의 계약이 만료되어 독일로 돌아가는 길에 조선에 들른 것이었다. 곳체는 138일에 걸쳐 2,550km의 거리를 주파하며 조선의 지질을 조사했다.7
곳체는 귀국한 후 자신의 조사자료를 바탕으로 조선의 지질, 지리, 광물을 소개한 3편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베를린 프로이센 왕립학술원 회보에 게재한 “한국의 지질개관(Geologische Skizze von Korea)(1886)”이었다. 한반도를 “지질학적 견지로 보아 완전히 미지의 나라”라고 규정하고 시작한 이 논문에서 곳체는 한국 지질계통을 수립하고자 했다. 그는 한국의 지질을 결정 편마암계, 캄브리아계, 석탄계, 제3계, 고기 화성암층, 그리고 신기 화성암층으로 구분하였고, 그 결과를 1:4,000,000 색판(色板) 한국 지질도로 나타냈다. 하지만 한반도에 관한 곳체의 논문은 이 세 편으로, 더 이상의 논문은 출판되지 않았다.8
곳체로부터 시작된 한반도 전기 고생대 지층 연구는 이후 약 20년간 침체하여 있다가, 러일전쟁(1904-1905)을 계기로 본격화하였다. 일본은 1905년에 통감부를 설치하면서, 대한제국 농상공부 광무국 광무과 내에 광상 조사기관을 두고 자국의 지질학자들과 광산기술자들을 파견하여 한국과 만주의 광산자원을 조사하는 만한이원조사(1905-1906)를 시작했다. 당시 일본 지질학 발전을 견인하던 제도적 장치는 도쿄제국대학 지질학ㆍ채광학과와 일본 지질조사소였는데, 이를 보여주듯 만한이원조사를 위해 광무과에 파견된 고문 고지베 타다스네(巨智部忠承), 이노우에 기노스케(井上禧之助, 1873-1947), 이키 추네나카(伊木常誠), 가네하라 노부야스(金原信泰) 등 10여 명은 모두 도쿄제국대학 출신으로서 일본 지질조사소에 소속되어 있던 지질학자들이었다.9
만한이원조사는 한반도의 자원 현황을 파악하고 광업 발달의 가능성을 판단하기 위한 사업이었지만, 이 사업에 참여했던 이노우에는 한반도 전기 고생대에 관해 학문적으로 중요한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노우에는 만한이원조사 결과를 종합하고 편집하여 1906년에 『한국광업조사보고(韓國鑛業調査報告)』10로 펴냈고, 조사 보고를 끝낸 다음 해인 1907년에는 이를 정리하여 “한국의 지질 및 광산(韓国の地質及鉱産)”이라는 논문을 일본 『지학잡지』에 발표했는데, 이 논문에는 한반도 지질계통에 관한 중요한 고찰이 들어 있었다. 이노우에는 암석학적 분류를 통해 군산층(群山層), 천매암층(千枚岩層), 조선층(朝鮮層), 방추충석탄암(紡錘蟲石炭岩) 등을 명명했는데, 그중 조선층은 평안남도, 황해도, 강원도 태백산 분지에 걸치는 넓은 지역의 규암(硅巖), 점판암(粘板岩) 및 석탄암(石炭岩)으로 구성된 두꺼운 지층에 붙인 이름이었다. 이노우에가 명명한 조선층은 오늘날의 조선누층군과 상원계(祥原系)를 합친 암석층이었다. 이노우에가 하부 고생대 지층인 조선층을 확인하고 명명함으로써 곳체 이후 정체되었던 한반도 전기 고생대 연구는 한 단계 진전을 이루었다.11
일본은 1910년 한일병합조약을 맺고 조선총독부를 설립한 이후에 조선 전역에서 조선광상조사사업(1911-1917)을 실시했다. 조선총독부에서 명시한 조선광상조사사업의 목적은 “시대에 맞는 광업 행정을 위한 자료를 확보하고 현재 운영 중인 광산들에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였다.12 조선총독부 농상공부 상공국 광무과(鑛務課)가 주관한 이 사업은 도쿄제국대학 지질학과를 졸업한 이후 사할린 등에서 광상 조사 경험을 쌓았던 가와사키 시게타로(川崎繁太郎, 1878-1940)를 주임기사로 광상조사반을 구성하여 6년 예정으로 진행되었다. 1911년에 시작되어 1917년에 완료된 조선광상조사사업의 결과는 『조선광상조사보고(朝鮮鑛床調査報告)』 열두 권(1921-1924)과 『조선지질조사요보(朝鮮地質調査要報)』 두 권(1919, 1924)으로 발간되었다.13
가와사키는 『조선지질조사요보』의 “조선에 있어서 고생대 및 중생대의 지층명” 소절에서 1907년 이노우에 조선층이라고 명명한 지층을 “조선계”라고 불렀다. 한반도 전기 고생대 지층에 대한 명칭으로 “조선계”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사용된 것이었다. 가와사키는 자신이 명명한 조선계의 암석학적 특징에 관해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캠브리아기에서 오르도기까지 연속적으로 발달한 두꺼운 지층 가운데, 최하부에서 주로 규암과 점판암이 빈번히 드러나는 부분은 양덕층이라 부르고, 상부에서 주로 석회암이 자주 드러나는 부분은 대석회암층 혹은 대석회암층 가운데 오르도기에 해당하는 부분은 만달층으로 부른다.14
가와사키는 캄브리아기의 지층과 오르도비스기의 지층을 합쳐서 조선계라고 불렀고, 암상에 따라 조선계를 양덕층과 대석회암층으로 구분했다.
가와사키가 명명한 조선계를 세부적으로 분리한 지질학자는 나카무라 신타로였다. 1906년에 도쿄제국대학교 지질학과를 졸업하고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 강사와 일본 지질조사소 기사로 일하던 나카무라는 1911년 조선총독부 기사로 한반도에 부임하여 가와사키와 함께 조선광상조사사업에 참여했다. 그는 조선 전역에서 산출되는 광물을 조사하여 보고하는 공식적 임무 이외에, 8년간 한반도 전역을 돌아다니며 한반도 지질계통 연구의 기초를 다졌다. 나카무라는 강원도 남부의 광물 자원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태백산 분지 일대에 캄브리아기와 오르도비스기 화석이 있음을 확인했다. 1918년, 조선총독부는 조선의 지질과 자원을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조사하고, 광업, 토목, 수리 사업에 필요한 기초 자료를 제공할 수 있는 전문기관으로서 지질조사소를 설립하였는데, 나카무라는 조선총독부 지질조사소 기사(技師)로서 한반도 지질조사소가 주관하는 탄전 조사사업 등에 참여했다. 1919년 교토제국대학교 지질학과 교수가 되어 일본으로 돌아간 그는, 그간의 조사사업 결과를 모아 한반도 지질에 관한 몇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15
한반도의 전기 고생대 지층에 관해 1970년대까지 영향을 끼친 논문은 나카무라가 1927년에 발표한 “조선지질구조론서설”이었다. 이 논문에서 나카무라는 이노우에의 조선층과 가와사키의 조선계를 암상에 따라 세분하여 전기 고생대는 조선계로, 원생대는 상원계로 나누었다. 조선층 상부와 하부 사이에 암상 차이가 뚜렷하고, 상부와 하부가 부정합 관계를 형성하며, 고생대 화석이 조선층 상부에서만 발견되고 하부에서는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나카무라는 화석이 발견되지 않는 조선층 아래층을 원생대의 지층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조선층으로부터 분리하여 상원계라고 불렀던 것이다.16
아래 그림 1은 나카무라의 논문에 등장하는 <조선지질계통도(朝鮮地質系統圖)>의 일부인데,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나카무라는 양덕층 하부는 상원계로 분류하였고, 양덕층 상부와 대석회암층을 합쳐 조선계로 분류하였다. 나카무라에 의하면 조선계는 캄브리아기와 오르도비스기를 모두 포함하는 지층이 된다.17

1925년에 가와사키에 의해 조선층이 조선계로 바뀐 이후 조선계라는 용어는 일관되게 사용된 반면, 조선계를 구성하는 대석회암층과 양덕층은 이후 혼용되는 모습을 보였다. 1918년에 조선총독부 지질조사소를 설립한 일본은 한반도의 석탄 이용을 극대화하고 선광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1922년에 연료선광연구소를 설립하고 탄전 매장량과 광물자원 분포 상황 등을 조사했는데, 연료선광연구소의 기사였던 지질학자 시라기 타쿠지(素木卓二)는 1926년부터 1928년까지 실시했던 삼척 무연탄전 조사보고서(1940)를 제출하면서 조선계를 아래 설명과 같이 양덕통과 대석회암통으로 나누었다.
본 계(조선계를 의미)는 하부의 태백산통을 부정합으로 덮고 상부의 평안계에 속하는 지층에 의해 부정합으로 덮인, 조선의 있어서 고생대 전반(캄브리아-오르도비스기)을 대표하는 지층으로, 하부는 주로 규암, 천매암질 혈암으로 되고, 상부는 석회암, 이회암을 주로 한다. 이상과 같이 상하 암질의 특색으로 나누어 양덕통과 대석회암통의 양 통으로 구분하여...18
1931년부터 1945년까지 약 15년 동안 조선총독부지질조사소 소장을 역임하는 등 한반도 지질을 가장 오랫동안 연구한 일본 지질학자 중 한 명인 다테이와 이와오도 한반도 지질을 개관한 1960년의 논문에서 양덕통(Yôtoku Series)과 대석회암통(Great Lomestone Series)이라는 용어를 쓴 것을 볼 수 있다.19
시간층서 단위인 ‘계’, ‘통’과 암석층서 단위인 ‘층’이라는 용어는 일본인 지질학자들뿐만 아니라 한국인 지질학자들도 해방 이후 그대로 사용하였다. 1959년에 발표한 한국의 고생물학자 김봉균(金鳳均, 1920-2003)의 논문 “한국산 식물화석 목록”에는 한반도의 지질연대표가 들어있는데, <그림 2>를 보면 조선계가 양덕통과 대석회암통으로 나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20

김봉균뿐만 아니라 해방 이후 한국 지질학 연구를 이끌었던 지질학자 손치무(孫致武, 1911-2000)나 정창희(鄭昌熙, 1920-2022)도 1970년대 말까지 ‘계’와 ‘통’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정창희가 1958년에 처음 출판하고 이후 1970년에 개정판을 낸 『신지질학개론(新地質學槪論)』을 보면 한국의 전기 고생대 층서에 이들 용어가 그대로 사용되고 있으며21, 평창-정선 일대의 지질 구조를 규명한 손치무의 1977년 논문에서도 이 용어가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22 이처럼 해방 이후에도 일본인 지질학자들과 한국인 지질학자들은 조선계, 양덕통, 대석회암통 등의 시간층서 단위를 암석층서 단위에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혼용 속에서도 조선계라는 용어가 내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도 함께 진행되고 있었다.23
3. 지명의 지역화: Chosen에서 Joseon으로
지질도는 암석 분포, 지질 구조, 지층 배열 등에 관한 정보를 색과 선, 기호로 표현한 지도로, 일종의 땅의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한국지질자원연구원(KIGAM, Korea Institute of Geoscience and Mineral Resources)에서 지질도를 제작하는데, 지질도에는 그동안 축적되어 온 최신의 지질학 연구 결과가 반영되어 있으므로 특정 지역의 지질계통 연구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척도가 될 수 있다. 한반도 지질도 중 1:1,000,000 축척의 지질도는 처음 만들어진 이후, 1956년, 1981년, 1995년, 2020년 모두 네 번에 걸쳐 개정되었다.24
한반도 최초의 지질도는 1928년에 조선총독부 지질조사소에서 발행한 1:1,000,000 축척의 <조선지질총도(朝鮮地質總圖)>이다. 1918년 지질조사소 설립 이후 10년 동안 진행한 한반도 지질연구 결과를 종합하여 펴낸 이 지질도의 범례(凡例, legend)를 살펴보면 일본은 조선계를 Chosen System, 평안계를 Heian System이라고 기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조선의 일본식 발음을 한자와 병기하고 있는 것이다.25
한반도 전기 고생대 지층의 계통을 밝히는 데 가장 크게 공헌한 일본인 지질학자 고바야시 데이이치는 1927년부터 약 20년간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 진행했던 한반도 지질연구 결과를 모아 1953년에 강원도 지역의 캄브리아-오르도비스기 지층과 동물상을 정리한 논문을 발표했는데, 영어로 출판한 이 논문에서 그는 각각 Chosen System(조선계), Yotoku Series(양덕통), Great Limestone Series(대석회암통)라는 용어를 사용했다.26 앞서 언급했던 다테이와 이와오도 1960년에 출판한 논문에서 Chôsen System, Yôtoku Series, Great Limestone Series라는 용어를 이용하여 한반도의 지질을 개괄하였다.27
해방 이후 한국인 지질학자들은 일본 지질학자들이 한국의 지층명을 일본식 발음으로 부른 것에 대해 두 가지 점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첫째는 그것이 식민 지배 의도를 드러내는 명칭이었다는 지적이었고, 다른 하나는 지역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비판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역할은 손치무나 김옥준과 같은 한국의 1세대 지질학자들이 주도하였다.
1954년 콜로라도대학교(University of Colorado)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1955년부터 조선총독부 지질조사소의 후신이자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전신인 중앙지질광물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던 김옥준(金玉準, 1916-2004)은 1956년 8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 및 극동아시아 경제위원회(Economic Commission Asia and Far East, ECAFE) 지질학자 주무자 회의(Working Party of Senior Geologists)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게 되었다. 당시 주무자 회의의 주제는 아시아 지역 지질도(Regional Geological Map for Asia and the Far East) 제작과 표준화 방식에 관한 것이었다.
ECAFE 회의를 위해 한국의 지질학자들은 대한지질학회 안에 한국지질도편찬위원회를 만들고 지질도 개정 작업을 진행하여 1956년에 1:1,000,000 축척의 <대한지질도>를 완성했다. <조선지질총도>의 1차 개정판인 <대한지질도(大韓地質圖)>는 한국인 지질학자들이 일제강점기에 명명된 일본식 지층명을 한글 발음으로 바꾸어 사용한 첫 시도였다. 아래 <그림 3>의 <대한지질도>의 범례를 보면, <조선지질총도>와 달라진 점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대한지질도>에서는 조선계를 이전의 Chosen System에서 Chosun System으로, 평안계는 Heian System에서 Pyongan System으로, 즉 지층명의 로마자 표기를 한국어 발음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손치무(孫致武, 1910-2000)는 해방과 함께 한국 지질학계가 당면한 문제점을 분석하고, 학문적 독자성 확보를 위한 지질학자들의 책임에 관해 역설하던 한국의 제1세대 지질학자였다. 그는 특히 <대한지질도>를 펴낸 1956년이 한국 지질학 발전에서 중요한 전환이 일어난 시대라고 지적했다. 해방과 전쟁으로 연구 기반이 전혀 없던 한국의 지질학자들이 일제강점기 지식에 대한 비판과 함께 최초로 개선을 시도한 것이 바로 <대한지질도> 편찬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이 <대한지질도> 안에는 한반도 지층명을 한국어 발음으로 표기하겠다는 한국인 지질학자들의 의지가 적극적으로 반영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28
김옥준은 완성된 <대한지질도>를 가지고 ECAFE 회의에 참석하였다. 문제는 회의에 참석한 일본인 지질학자들이 해방된 지 10년이나 지났음에도 여전히 일본식 발음으로 한국의 지층명을 사용하기를 요구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김옥준은 “지층명은 이것이 유래된 국가 고유 발음을 따르는 것이 원칙이라고 통렬히 반박하고 그들의 부당성을 지적”하였다.29
ECAFE 회의 결과는 1961년 유엔 발행 1:5,000,000 축척의 <아시아와 극동아시아 지역 지질도> 출판으로 이어졌다. 1961년의 지질도 출판 당시에 김옥준의 요구가 명확히 반영되었는지 현재 확인하기 어렵지만, 대신 이 지질도의 1차 개정판인 1972년 지질도의 해설집(Explanatory Note)에서는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이 해설집에서는 시ㆍ원생대로부터 신생대에 걸쳐 아시아 국가별로 당시까지 발견된 지층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극동아시아의 선캄브리아 지층을 소개하면서 상원계를 Sangwon System으로 소개하고 있다. 또, 한국의 조선계를 <대한지질도>에서처럼 Chosun System으로 명시하면서 이 지층이 전기 캄브리아기와 중기 오르도비스기 지층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는 김옥준과 같은 한국인 지질학자들의 노력으로 지층 이름이 한국 발음으로 국제 지질학계에 소개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한 예라고 할 수 있다.30
손치무는 일본식 발음을 일제의 식민 지배 의도와 연결하여 비판한 대표적인 한국인 지질학자였다. 손치무는 1957년의 논문에서 “지층명은 단위 지층이 표식적으로 발달된 지역의 지명을 따는 것이 보통이다”라고 말하면서, 상원계를 예로 들어, 비록 한자명은 동일하더라도 일본 지질학자들이 지역명의 영어 발음인 Sangwon System 대신에 일본식 발음인 Shogen System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에 대해 “타국의 지층명을 자국식 발음으로 하여 국제적으로 고정화시키려는 흉계야말로 타기되어야 할 침략 근성의 발로라 아니할 수 없다”라고 비판하였다.31
한국인 지질학자들의 이러한 비판에 영향을 받았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고바야시는 1960년대 들어 지층명을 수정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1953년에 발표한 논문까지는 한반도의 지명과 지층명을 그대로 일본식 발음으로 기재했던 데 반해, 1966년 논문에서는 대부분 한국식 발음을 사용하였다. 예를 들어 1953년의 논문 “한국의 지질”에서 고바야시는 조선계 각 지역을 명명할 때 평창은 Heisho로, 영월은 Neietsu로, 정선은 Seizen으로 불렀고, 지층명도 화절층은 Kasetsu로, 동점규암은 Doten quartzite로, 영흥은 Eiko라고 불렀으며, 평안계는 Heinan system, 옥천대는 Yokusen zone으로 불렀다. 다만 1953년 논문의 마지막 부분에 지명과 지층명의 일본어 발음과 한국 발음을 비교하는 색인 목록을 제시한 점에서 일본어 발음만을 이용했던 그 이전의 논문들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32
그에 비해 한국의 하부 고생대에 관한 연구를 총정리한 1966년의 논문에서 고바야시는 대부분 한국어 발음을 사용하거나 필요에 따라 일본어 발음과 한국 발음을 병기하여 사용하였다. 예를 들어 그는 화절층은 Hwajeol formation, 동점규암은 Dongjeom quartzite, 영흥은 Yeongheung으로 나타냈고, Yokusen을 Okcheon으로 바꿔 부르는 등 각 지역명도 모두 한국 발음을 이용하여 불렀다. 하지만 논문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조선계에 대해서는 여전히 영문 표기로 Chosen을 사용하고 있었다.33
일본식 명명에 대한 비판은 1970년대에도 지속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은 일본인들의 지층명을 그대로 답습했던 한국인 지질학자들 자신에 대한 반성과 함께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과학기술처의 후원을 받아 정창희를 책임연구자로 하여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에서 진행한 “한국 지질계통 확립에 관한 조사연구” 보고서의 서론에는 아래와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일제강점기 동안) 모든 조사는 일본인 지질학자들에 의하여 시행되었으며, 1945년까지 27년간 한국의 지층명은 그들에 의하여 붙여졌다. 지층명은 한자로 되어있지만, 일본 발음법에 따라 발음되고 외국에도 같은 발음으로 소개되었다. 1956년에 파리에서 발간된 『만국지층명사전 한국지부(萬國地層名辭典 韓國之部)』는 해방 후 10여 년이 지난 다음이었음에도 그 집필이 일본인 지질학자들에게 위촉되었고 따라서 지층명은 모두 일본식 발음으로 로마자화되어 우리의 국위를 손상시켰다. 이러한 일은 독립국인 대한민국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되어 대한지질학회에서는 그 시정을 요구하였으나 무시당하고 말았다. 이러한 일이 발생한 데는 한국 지질학자들의 책임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한국 지질학자들은 해방 후에도 안이하게 일본 지질학자들이 합병 당시를 전후하여 명명한 한국의 지층명을 거의 그대로 답습하였던 것이다.34
이에 따르면 손치무, 김옥준, 정창희와 같은 한국인 지질학자들은 지층명이 일본식 발음으로 표기된 자체가 일제강점기의 유산이며 독립된 조국에 대한 모독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이를 역으로 해석하면, 한국인들이 부르는 지역명에 따라 지층명을 붙이는 행위 자체가 이들에게는 학문적 주권을 회복하는 행위의 일환이었음을 의미했다.
오늘날 한국의 지질학자들은 조선계를 쓸 때, 지역명의 영어 발음을 로마자화한 “Joseon”을 사용하고 있다. 조선계의 ‘조선’이 일본식 발음에서 한국식 발음으로 전환되는 과정은 이처럼 일제강점기의 유산을 버리고 지역성을 회복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4. 층서 단위의 보편화: 계에서 누층군으로.
1) 국제 지층 구분 지침 제정과 도입
국제지질연맹 국제층서위원회 소속의 국제층서분류소위원회(International Subcommission on Stratigraphic Classification, ISSC)(이하 소위원회)35는 1976년에 “지층 구분의 원칙에 관한 국제적 합의를 촉진하고 국제적으로 통용 가능한 층서학적 용어와 지층 구분 절차의 원칙을 제시”하여 층서 작업을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국제 층서 지침서(International Stratigraphic Guide)』(이하 『지침서』)를 출판했다. 국제 층서 분류 소위원회는 1952년에 창설되었는데, 『지침서』를 출판할 당시 회원은 개인 회원 55명과 당연직 회원 35명, 그리고 33개국에 달하는 단체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국에서는 1960년 전후에 당시 국립지질조사소 소장이던 김옥준(金玉準, 1916-2004)이 개인 회원 자격으로 소위원회에 참여했으며, 1972년 이래 대한지질학회가 단체 회원으로 참가하고 있었다.36
『지침서』 편찬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 것은 소위원회의 창설자이자 초대 의장으로서 20년 이상(1952-1976) 소위원회를 이끌었던 홀리스 헤드버그(Hollis D. Hedberg, 1903–1988)였다. 헤드버그는 고생물학, 층서학, 퇴적학, 석유지질학, 지질학사 등의 분야에서 활약한 미국의 지질학자인데, 『지침서』 편집과 출판을 통해 층서학적 용어를 통일하여 전 세계적으로 지질학자들 간 소통을 원활하게 한 일은 그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지침서』가 제시한 층서 구분 기준은 오늘날 대다수 국가의 층서학자들에 의해 수용되고 있다.37
이 『지침서』가 법칙(law)이 아닌 일종의 안내서(guide)임을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 지질학 커뮤니티가 이를 수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헤드버그가 『지침서』를 편찬한 과정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지침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헤드버그는 서면 질의서와 응답지, 토의, 결론으로 이어지는 절차를 통해 층서 구분에 관한 지질학자들의 의견을 모아 나갔다. 그는 47회에 달하는 회람(circular)과 소위원회 보고서 등을 통해 국제적으로 저명한 층서학자들과 아이디어를 효과적으로 교환하고 토론하고 수정하면서 합의점을 도출하고자 했고, 이를 통해 층서학의 원칙과 용어의 표준화에 관한 전 세계 지질학자들의 관심을 견인해 내고자 했다. 『지침서』의 내용뿐만 아니라 출판 여부도 회원들의 투표를 통해 결정되었다. 소위원회에서는 1974년에 『지침서』 초안을 작성한 후, 이를 소위원회 전체 회원 125명에게 넘겨 초안을 출판할지를 결정하였다. 그 결과 찬성 85대 반대 3으로 발간 계획이 승인되었다. 한국에서는 대한지질학회를 대표하여 지질학자 장기홍(章基弘, 1934- )이 투표하였는데, 그 역시 『지침서』 출판에 대해 찬성표를 던졌다.38
장기홍은 『지침서』가 한국의 지질학자들에게 수용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는데, 여기에는 지침서 제작을 위한 국제 네트워크와의 결합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장기홍은 『지침서』를 편집한 헤드버그의 제자였다. 1957년에 서울대학교 지질학과에 입학한 장기홍은 졸업 후 미국 프린스턴대학교(Princeton University)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경북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초대 학장을 역임했다. 헤드버그는 1959년부터 1972년까지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층서학을 가르치며 『지침서』 편집 작업을 계속했는데, 당시 프린스턴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장기홍은 헤드버그의 편집 과정을 직접 목격하면서 진행 상황을 잘 알 수 있었다.39 따라서 장기홍은 『지침서』가 출판되기 이전에 이미 한국의 『지질학회지』를 통해 『지침서』에서 제시할 다원적 분류 방법의 장점 및 편집 과정을 상세하게 안내할 수 있었다.40 장기홍은 『지침서』가 출판된 뒤인 1977년에도 이 책이 헤드버그와 위원들의 약 20여 년에 걸친 노력의 결실임을 강조하면서 『지침서』 각 장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는 글을 『지질학회지』에 실었다. 장기홍은 『지침서』가 “층서학 교재 또는 원서강독교재로서 적절할 뿐 아니라 모든 지질 관계자들의 필수 참고서”라고 강조했다.41
장기홍은 『지침서』가 국내에서 수용되는 데 힘썼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확산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에 UNESCO와 국제지질과학연맹은 국제지질대비프로그램(國際地質對比計劃, IGCP)을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었는데, 그 과제 중 하나가 “ESCAP 지역 퇴적분지 간 층서 대비(Stratigraphic Correlation between Sedimentary Basins of the ESCAP Region)”사업(1974-1982)이었다. 1974년에 착수된 이 사업을 위해 1975년 12월 1~6일간 ESCAP 본부가 있던 태국 방콕에서 지역위원회 겸 실무자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는 ESCAP 위원국 가운데 버마, 인도, 인도네시아, 이란, 한국, 말레이시아, 네팔, 필리핀, 태국, 소련 및 영국을 대표하는 24명의 층서학 전문가가 참석했는데, 한국 대표로는 장기홍이 참여하였다. 이 회의에서는 층서 도폭(Stratigraphic Atlas) 작성, ESCAP 지역 모식지표품(模式地標品, topotype) 저장소 마련 등 여러 의제가 토론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국제 지층 분류 지침 사용에 관한 것이었다. 회의에 참여한 위원들은 『지침서』를 ESCAP 지역 퇴적분지 지층 대비에 적용하는 문제를 주제로 토론하였고, 이를 위해 장기홍은 국제지층분류지침의 요점을 위원들에게 안내하였다. 그 결과 회의 참가국들은 만장일치로 『지침서』를 적용할 것을 결의하였다.42
2) 계에서 누층군으로
『지침서』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화석을 바탕으로 한 시간층서적 분류를 가장 우선시했던 고전적 분류 방법을 따를 경우, 세계 각 지역의 암석층서적 특성을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는 지질학자들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1948년에 헤드버그는 “일찍 시작했다는 이점과 주창자들의 권위에 힘입어, 유럽에서 처음 명명된 계와 통은 대부분 표준으로 받아들여졌고, 기존의 지층 구분 틀을 다른 대륙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고 해 왔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43
장기홍도 1967년의 논문에서 ‘계’라는 단위가 등장하게 된 역사적 배경에 대해 “초기 (서구의) 연구가들이 지질시대의 일정 기간에 퇴적된, 세계적으로 인정될만한 규모의 지층에 대하여 계라는 단위를 붙이게 되었고, 어느 계가 퇴적된 시기에 대하여는 紀(Period)라는 지질시대 단위를 사용하였다”라고 설명하였다. 그런데 아래 인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는 석탄계, 백악계와 같은 계가 서구의 지층에만 국지적으로 해당하는 특징을 바탕으로 지어진 이름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전 세계의 지층에 보편적으로 적용하려 했기 때문에 각 지역 지층의 다양한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44
각 계(系)의 상대적 시대순과는 관계없이 서구에 산재(散在)한 지층에서 먼저 연구되어 계로 등장한 선착순으로 편성되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편집된 층서주(Stratigraphic column)에 근거하여 구분된 지질시대는 어떤 점으로는 마치 세계사를 춘추전국시대, 고려시대, 명치시대 등으로 구분하는 것 같은 부조리(不條理)를 면할 수 없다. (중략) 서구에서 자연적인 것이라고 보이던 지층구분은 타 대륙의 많은 지역에서는 결코 잘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 서구에서 각 계에 특징적이라고 생각되던 다수의 화석계열은 지역에서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 명백해졌다.45
따라서 『지침서』의 기본 아이디어는 암질, 화석, 지자기, 화학적 조성 등 암석이 가지는 특성이 다양하므로, 암석층이 가진 다양한 특성들을 명료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종류의 지층 구분 유형을 독립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를 반영하여 『지침서』에서는 암석학적 특성을 바탕으로 지층을 구분하는 암석층서(Lithostratigraphy), 화석을 기준으로 지층을 구분하는 생층서(Biostratigraphy), 지층의 생성 연대를 바탕으로 지층을 구분하는 시간층서(Chronostratigraphy)를 다원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지층 단위가 무엇에 근거하여 규정된 것인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도록 하였다.46 암석층서 단위와 시간층서 단위를 정확하게 구분하여 사용하도록 『지침서』에서는 “통명(統名)이 층군(層群)에 해당하는 암석층에서 지층명으로 종종 사용되고 있으나, 이러한 사용은 중지되어야 한다”라고 권고하고 있다.47
1976년에 발표된 국제 층서 구분 기준에 의하면, 조선계와 양덕통, 대석회암통은 각 지층의 특성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는 지층명이라고 할 수 있다. 『지침서』의 기준에 따르면, <표 1>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층(Formation), 층군(Group), 누층군(Supergroup)은 암석층서 단위에 해당하고, 계(System)와 통(Series)은 시간층서 단위에 해당한다.48 가와사키, 나카무라, 시라기 등이 조선계를 양덕통과 대석회암통으로 나누었을 때 기준으로 삼았던 것은 두 통의 암석학적 구성이었다. 이들은 규암과 천매암질 셰일로 된 아랫부분은 양덕통으로 구분하고, 그 상부의 석회암 지대를 대석회암통으로 불렀었다. 한마디로 일본인 지질학자들은 지층을 분류할 때는 암석층서에 따라 분류하고, 지층명을 붙일 때는 시간층서 단위를 붙였던 것이다. 하지만 『지침서』가 등장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계와 통과 같은 단위가 일정한 규칙이 없이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인 지질학자들과 한국인 지질학자들이 조선계라는 명칭을 오랫동안 사용해 온 것을 오류라고 비판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49
표 1 『지침서』에 실린 지층 구분 유형과 각 구분 단위 용어 중 일부. International Subcommission on Stratigraphic Classification of IUGS Commission on Stratigraphy(Hollis D. Hedberg eds.), 10.
| 지층구분 유형 | 주요 구분 단위 용어 | 지질연대 단위 |
|---|---|---|
| 암석층서 | Supergroup(누층군) | |
| Group(층군) | ||
| Formation(층) | ||
| Member(층원) | ||
| Bed(소층) | ||
| 시간층서 | Eonothem(누대층) | Eon(누대) |
| Erathem(대층) | Era(대) | |
| System(계) | Period(기) | |
| Series(통) | Epoch(세) | |
| Stage(조) | Age(절) | |
| Chronozone(시간대) | Chron(시간) |
조선계라는 명칭이 가진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그것이 지역적 지층 단위라는 점이었다. 즉, 조선계는 한반도라는 특정한 지역에서만 적용되는 지층 단위였다. ‘계’가 시간층서 단위라는 개념이 정립되기 이전에 일본인 지질학자들은 한반도 태백산 분지에 형성된 일련의 두꺼운 지층을 지칭하기 위해 조선계라는 이름을 붙였다. 따라서 조선계는 세계적인 시간층서 단위와 맞지 않는다. <표 1>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어떤 기에 퇴적된 암석층이 계라고 한다면, 캄브리아기에 퇴적된 지층도 조선계가 되고, 오르도비스기에 퇴적된 지층도 조선계가 되는 셈이다. 왜냐하면, 조선계는 세계에서 공통으로 사용되는 시간층서인 캄브리아기와 오르도비스기가 합쳐진 계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림 1을 보면, 나카무라는 캄브리아계와 오르도비스계를 합쳐서 조선계로 할 것을 제안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계와 계를 더해 다시 계를 만드는 불합리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50
지질학에서는 지역 지질학(regional geology)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계’는 그런 공간 범위의 (그런 공간 범위 특유의) 지층 단위인 셈입니다. 지역적 층서 단위(Regional Stratigraphic Unit) 입니다. 한중지역 특유의 지층 단위인데 그것을 세계적 지질시간표에 놓았을 때는, 예컨대 조선계는 그 시기가 Cambrian-Lower Ordovician에 해당하는 것입니다.51
이에 대해 손치무는 해방 직전까지 이루어진 일본인의 한반도 지층 연구결과를 시생대, 원생대, 고생대, 중생대, 중생대로 나누어 시대별로 정리한 1957년의 논문에서 이미 조선계라는 명칭의 불합리성을 언급한 바 있었다. 손치무는 전기 고생대 지층인 조선계의 층서가 일제강점기에 상당히 많이 밝혀졌음을 인정하면서도, 지질시대를 달리하는 캄브리아기와 오르도비스기를 통합한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조선계는) 층서에 관한 연구가 대비적 진척된 지층의 하나이다. 지질시대를 달리하는 캠브리아계와 오오드비스기를 통합한 것이 불합리라 할 수 있다.52
장기홍도 조선계나 평안계와 같은 명칭은 세계 각지에서 층이나 층군 혹은 여러 계에 해당하는 지층에 계라는 용어를 남발하던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생각했다.53
조선계라는 지역적 명칭을 세계적인 시간층서 단위와 일치시킴과 동시에 최초의 분류 기준이었던 암석층서 단위를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은 계라는 단위명을 포기하고, 대신에 누층군(Supergroup)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1975년에 출판된 영문판 The Geology of Korea는 한국에서 최초로 누층군 개념을 적용한 책이다. 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전신인 국립지질조사소는 1971년에 영국 지질과학연구소(Institute of Geological Sciences, 현 British Geological Survey)와 공동으로 지하자원 공동탐사 계획을 세웠고, 이를 위해 영국의 지질학자 4명이 한국에 파견되어 약 2년 반 동안 충청북도의 황강리 지역 광물 탐사를 시행하였다. Geology of Korea는 이 탐사에 참여했던 영국 구조지질학자 안토니 리드만(Anthony J. Reedman)과 국립지질조사소의 엄상호가 당시까지 연구된 자료들을 정리하여 공동출판한 책이다. 이 책에서 리드만과 엄상호는 태백산 분지 하부 고생대 지층에 대해 처음으로 조선누층군(Joseon Supergroup)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54
1982년에 연세대학교 지질학과 동문회에서는 1967년부터 이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김옥준의 정년퇴임 기념으로 523쪽에 달하는 『한국의 지질과 광물자원』을 출판하였는데, 정창희, 김옥준, 이하영, 김봉균 등을 포함, 35명의 한국 지질학자가 집필에 참여한 이 책에는 한국의 지질과 광물자원에 관한 연구가 집대성되어 있다. 따라서 이 책에서 한국인 지질학자들이 사용한 용어를 보면 전기 고생대 지층에 새로운 명명법이 지질학자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적용되었는지 확인해 볼 수 있다.
본 절에서는 현 국제 층서명 규약에 따라 조선계를 조선누층군으로, 양덕통과 대석회암통을 각각 양덕층군과 대석회암층군으로 개정하기로 하며 남한에 발달된 조선누층군만을 대상으로 하여 기술한다.55
대한지질학회에서 지질학회 창립 40주년 기념사업으로 출판한 Geology of Korea에서도 이를 확인해 볼 수 있다. 1975년의 The Geology of Korea와 비교했을 때 이 책은 김봉균, 김옥준, 정창희, 이하영, 장기홍 등 집필자 16명이 모두 한국인 지질학자들이었고, 그 양도 1975년 책보다 방대했다. 연세대학교 지질학과 교수였던 이대성이 편집을 맡았던 이 책에는 1885년부터 1980년 중엽까지의 한국의 지질연구 결과가 종합되어 있다. 이 책에서도 “계나 통과 같은 시간층서 단위를 국제 지층 분류 코드에 따라 누층군과 층군으로 대체하겠다”라고 밝히면서 태백산 분지 캄브리아-오르도비스기 지층을 조선누층군이라고 부르고 있다.56 이처럼 1980년대 들어서 한국의 대다수 지질학자가 『지침서』의 지층 구분 기준을 적극적으로 수용했고, 이를 한국의 지질계통 정립에 활용했음을 볼 수 있다.57
지금까지 분석한 것처럼, 1970년대 『국제 지층 구분 지침서』의 도입은 한국인 지질학자들이 그동안 사용하던 조선계라는 지층명에 새로운 단위를 부여함으로써 한반도의 지층 분류를 체계화함과 동시에 지역적 지층 분류 단위를 국제적인 지층 구분 지침에 부합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즉, 그것은 지층명의 층서 단위를 보편화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5. 결론
본 논문에서는 한반도의 전기 고생대 지층인 조선계 명명이 변화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조선계의 로마자 표기를 지역명인 Joseon 대신 Chosen이라는 일본 발음으로 표기한 일본 지질학자들에 대한 비판은 1950년대 중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국인 지질학자들은 비록 한자가 같더라도 한 국가의 이름을 지층명으로 붙인 일본 지질학자들의 식민 지배 의도를 드러내고, 지층을 명명할 때는 지층이 발견된 지역에서 부르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식 발음의 지층명이 독립국인 대한민국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했던 지질학자들에게 1956년의 <대한지질도> 편찬으로부터 시작된 지역명 사용은 일제강점기 유산의 극복과정이었고, 주권을 드러내는 행위였으며, 지역성을 회복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계라는 층서 단위를 누층군으로 바꾸는 데는 국제적 기준의 도입이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 1970년대 이후 한국인 지질학자들은 암석층서 단위와 시간층서 단위를 독립적으로 구분한 국제 지층 구분 지침의 도입을 통해 지층명을 정비할 수 있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에 태백산 분지 전기 고생대 지층에 붙인 조선계, 양덕통, 대석회암통과 같은 지층명을 국제 지층구분 기준에 맞게 조선누층군, 양덕층군, 대석회암층군 등으로 수정하여 사용함으로써 조선계에 대한 오개념을 수정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만 적용되던 지역적 지층 분류 단위였던 조선계를 조선누층군으로 개칭한 과정에는 국제적인 연구 네트워크와의 결합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한국 지질학회는 『국제 지층 구분 지침서』 발간 결정의 과정에 직접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지침서』의 지층 분류 기준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도입했다. 1970년대에 활동하던 장기홍 등의 한국 지질학자들은 “지층명”을 매개로 자신들을 국제적 연구 네트워크에 연결할 수 있었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시간층서와 암층서가 혼용되던 이름인 “조선계”를 “조선누층군”으로 수정할 수 있었다.
본 논문에서는 한국의 지질학자들이 조선계(Chosen System)를 조선누층군(Joseon Supergroup)으로 바꾸는 과정이 지역명을 사용하는 과정이었음과 동시에 국제적 지층 명명 단위 기준에 부합하는 과정이었음을 보여주었다. 즉, 그것은 지역성을 회복하는 과정이면서도 보편성을 담보하는 독특한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