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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 전회와 조선시대사: 역사 속의 기지(機智)

History of Joseon Korea and Material Turn: Resourceful Creativity in History

이정1*
Jung Lee1*

1 이화여자대학교 Ewha Womans University

* 이 특집은 문중양 선생님께서 만드신 것이다. “물질적 전환과 조선시대사”라는 세미나 수업을 시작점으로 참가자들의 훌륭한 논문을 지도해 주셨고, 워크샵을 통해 그 의미를 배우고 나눌 기회도 주셨다. 워크샵을 후원해 주신 국사학과 정요근 선생님, 축사를 통해 이 논문의 내용에도 많은 도움을 주신 임종태 선생님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함께 ‘여행’해 준 저자들과 청중, “서문”의 기회를 주신 이두갑 편집장과 이종식, 박서현, 이정림 편집진, 심사위원께도 감사드린다.

발행: 2026년 4월·Vol. 48, No. 1·pp. 89-102

DOI: https://doi.org/10.36092/KJHS.2026.48.1.89

Abstract

This special issue presents the five works that merged the historical investigation of the Joseon era with the so-called “material turn” in global circulation. They cited Bruno Latour’s Actor-Network theory and Pamela Smith’s research on tacit knowledge. Yet, they mostly focus on sharpening their historical acumen through a unique lens. Above all, they have selected an unconventional cast of heroes for their research, aiming to “fairly treat those who have sustained our lives without receiving due recognition.” These subjects include artisans, stones, lime, elm juice, soldiers’ bodies, Korean indigo plants, ice, pine trees, timber, gardens, Beijing flower shops, and daffodils. To reveal the roles of these heroes, the authors employ two specific historical methods: reading against the grain and following socioecologically intertwined contexts. By carefully reading between the lines and tracing interconnected contexts, they dynamically illustrate the diverse knowledge practices carried out alongside these material actors. For years, historians of science in Korea have grappled with the question: "Is there science in Korean history?" While previous scholars have addressed this in various ways, these five works add a "material sensibility" to those efforts while revealing various everyday science in use and its resourceful creativity that I call giji.

Keywords:material turngijiresourceful creativitytacit knowledgeactor-network theoryKorean historyhistory of science and technology

역사가는 말로 이야기를 만들 뿐 손에 잡히는 뭔가를 만들지는 못한다. 말이 책이라는 사물에 담기기도 하지만, 그 물질적 책은 수많은 다른 이들이 만들어 준다. 하지만 이번 특집을 내면서 조선시대사 전공자들에게 배우게 된 일은 “물질적 전회”는 역사가에게 새롭거나 낯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논문이 처음 발표된 워크샵을 제안하면서 저자들은 이렇게 썼다.

인간과 물질, 환경의 상호작용 속에서 조선시대사를 다시 읽음으로써 더 다양한 역사의 주역들을 만나고, 문헌과 지식인들의 담론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웠던 빈틈을 메울 수 있을 것이다. 또, 과거를 바라보는 눈을 넓히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오늘날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있지만 잘 드러나지는 않는 수많은 주역을 공평한 시각으로 살필 수 있기를 바란다.1

“물질적 전회”는 “material turn”이란 국제적으로 유통 중인 이론적 경향을 번역한 것이고, 이들은 과학학(Science, Technology Studies) 연구자 브루노 라투르의 행위자-연결망 이론(Actor-Network Theory, ANT), 암묵지(tacit knowledge) 연구를 심화시켜 온 과학기술사학자 파멜라 스미스의 연구, 혹은 인류학자 이고르 코피토프의 “사물의 문화적 생애사(Cultural Biography of Things)”를 참고하기도 했다.2 하지만 조선 후기 “교유 원예학”을 살펴본 정쩌싱은 “이러한 이론적 참조는 특정 이론을 선험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보다 적절하게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명히 밝힌다. 역사적 사실을 적절하게 설명하는 것은 역사가의 오랜 소명이다. 워크샵 제안서에 있던 “물질적 전환”이나, 새로움을 강조하는 “신유물론” 대신 물질적 전회라고 쓴 것은 전회(轉回)라는 말이 뜻하는 돌고, 돌고, 도는 흐름, 그러나 모두가 원래 자리는 아닌 흐름을 생각해 보려는 것이다.

이들의 물질적 전회에서 우선 색다른 것은 연구 대상이다. 우리는 평생을 만나도 다 만날 수 없는 수많은 구성원과 함께 현재를 산다. 과거라는 끝없이 넓은 바다에도 역사책에 등장한 적 없는 수많은 구성원이 있다. 이들이 매력을 느껴 수면 위로 끌어올려 준 역사의 구성원은 한국사 일반에서는 물론 과학기술사 분과에서도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있지만 잘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주역을 공평한 시각”으로 살피고자 하는 이들의 감수성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투고 순으로] 안소희는 “망자의 마지막에 예를 다해야 한다”는 가치를 유교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조선 초 왕릉 조성을 다루었다. 왕릉 조성을 둘러싼 논의인 만큼 실록과 문집에 실린 국왕과 신료의 논의를 핵심으로 하는 정치사, 지성사를 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왕릉을 만드는 장인, 왕릉을 구성하는 돌, 나무, 석회 등의 다양한 재료, 땅속의 습기, 벌레까지 주목했다. 정일태와 허대영은 조선 후기의 두 무예 서적을 다루었다. 『무예제보(武藝諸譜, 1598)』와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1790)』이다. 역시 선조와 정조가 간행을 뒷받침한 책이니, 정치사나 무예 문헌에 대한 지성사일 수 있다. 이들은 3차원적이며 체화된 몸의 지식을 문자화, 도안화해 낸 무관이나 서얼 편찬자, 이들의 번역에 필수 요소였던 군인의 몸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최수정은 남염(藍染), 즉 남색으로 염색하는 기술을 다루었다. 농서와 실용서에 실린 남염 기술 지식의 변천사를 아우르되 저자는 염색 재료인 쪽풀과 쪽풀을 다루는 장인에 주목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들의 성공적 협업을 가능하게 하는 얼음, 쪽풀, 장인의 앙상블이 전면에 왔다. 오유빈은 1830년 창경궁 화재와 1833년 창덕궁 화재 이후 이어진 창덕궁 대조전(大造殿) 재건이라는 사건을 다루었는데 재정, 군정, 건축사 성과를 기반으로 나무가 목재가 되는 과정을 추적했다. 창덕궁 대조전의 대들보가 되는 소나무가 주인공이다. 정쩌싱은 조선 후기 원예 지식을 식물이 모인 공간, 식물 정보의 소통, 식물의 움직임에 주목해서 살폈다. 지식의 전문성을 살피는 과학사, 정원 취미와 시문을 다루는 문화사, 문학사와 다른 접근이다. 화훼 지식이 생산되고, 검증되고, 유통되고, 확장되는 공간으로서의 정원과 연행길의 꽃가게, 이곳을 거쳐 간 이들을 연결하는 식물이 주인공이다.

신선한 등장인물만으로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어설픈 새 이야기는 오래된 서사를 흔들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의 이야기가 조선시대에 대한 우리의 익숙한 생각을 되짚어보게 한다면 역사가의 도구를 다룬 이들의 솜씨가 서툴지 않아서일 것이다. 이 글은 이들의 방법적 실천 두 가지와 그 실천의 결과 달라진 역사 속의 과학기술에 대한 시각을 짚어 보고자 한다. 이들의 주목할 만한 시도에 기대어 “물질적 전회”의 의미를 말해 보려는 것이다.

첫째 방법적 실천은 주목받지 못했던 배역의 목소리를 살려내는 행간 읽기이다. 이들이 택한 역사의 구성원들은 역사가의 가장 중요한 도구인 문헌에 직접적 화자로는 잘 등장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의 주인공을 오해하거나 간과하는 경우가 많은 문헌을 버리는 대신 어느 역사가보다 면밀하게 문헌의 행간을 살폈다. 둘째 방법적 실천은 물질과 사회가 뗄 수 없이 얽힌 역사적 맥락 따라가기이다. 이들은 역사적 맥락을 고정된 배경으로 제시하는 대신 특정한 사물, 활동, 공간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국지적 맥락이 형성되는 과정을 역동적으로 추적했다. 행간을 살피고, 뗄 수 없이 얽힌 사회, 생태, 물질, 사상의 다양한 연결고리를 추적한 이들의 노력 덕분에 우리는 과거의 한순간을 경험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그 역사의 현장에서 우리는 인간의 몸을 포함한 사물과 우리가 맺어 온 긴밀한 관계를 느끼고, 우리가 흔히 과학기술이라 불러온 것이 사는 동안과 그 이후의 집을 만들고, 옷과 물건에 색을 더하고, 벗을 사귀고 전쟁에 대비하는 모든 일에 생각과 행동으로 스며있음을 본다. “역사 속의 과학기술”에 대한 과학사학계의 오랜 고민에 좋은 답을 선물 받은 셈이니, 함께 풀어 보려 한다.3

1. 물질도 말하게 하는 행간 읽기

사료를 그대로 옮겨 적는 역사가는 없다. 사료가 전하는 일부의 진실을 전체의 진실로 오해하는 역사가도 드물 것이다. 하지만 사료의 한계에 대한 인식이 언제나 충분하지는 않다. 기록으로 남지 못한 수많은 일에 대한 무지를 불완전한 기록에 의존해 메꿀 수밖에 없음을 불안해하자면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겠지만 사료의 심대한 공백은 늘 깊이 새겨둘 일이다. 조선의 사관이 만든 고려사를 제외하면 고려의 사료도 매우 부족하듯 유럽에서도 11세기 이전의 사료는 대부분 성직자가 남긴 것일 뿐 귀족과 왕가도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전하지 못했다. 보편교육이 세계적으로 도입된 20세기 이전 대부분 사회에서 글을 읽는 인구는 극히 소수였고(종이책도 널리 유통되지 못했다), 읽는 이 모두가 기록자가 되지도 않았다. 그 기록 중 남은 것도 일부일 뿐이다. 문헌 기록만을 통해 역사를 한다는 것은 극소수의 운 좋게 남은 말에 의존하는 일이다.4

문제는 기록이 부족한 데만 있지는 않다. 점점 빠르게 쌓여 가는 선행 연구를 비롯해 읽어야 할 것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이다. 널리 유통된 권위 있는 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다행이자 불행인 것은 그런 글은 대개 흥미롭고 그럴듯하다는 것이다. 챗GPT 이전에도 허언증에 가까운 주장은 있었다. 일례로 말 안장 등자(stirrups)와 봉건주의 사회체제를 연결한 “기술결정론자”로 비판받아 온 린 화이트 주니어가 있다. 실제 그의 글은 사료의 한계를 면밀하게 고찰한 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고고학, 도상학(iconography), 어원학(etymology)의 모든 자원”과 생태환경까지 고려할 것을 역설하며 유럽 바깥으로도 시야를 넓힌 흥미진진한 것이었다. “물질적 전회”의 선구자일 수 있는 그가 “기술결정론자”로 비판받아 온 것은 흥미로운 단편적 주장의 위험을 잘 보여준다.5

그래서 사료의 행간까지 직접 살피는 일은 중요하다. 안소희는 왕의 유언이나 조선 관혼상제의 예법을 규정하는 전범인 『주자가례(朱子家禮)』의 무게 있는 말이 현실 속에서 저절로 힘을 얻은 듯 다루지 않았다. 세조는 “죽으면 속히 썩어야 하니 석실이나 석곽은 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고, 이는 『가례』에 용인된 무덤 조성의 재료인 삼물회(三物灰, 석회, 세사(細沙), 황토의 세 가지를 혼합한 물질)를 사용하는 회격릉으로 기술이 전환될 계기가 된다. 하지만 유언을 받은 대신들이 바로 회격릉에 합의할 수는 없었다. 왕릉에 석실을 사용해 온 전례가 있고, 돌에는 물질적 특성, 기술적 기능과 결부된 가치가 깃들어 있다. 안소희는 관료들이 석회라는 재료로 그 예에 맞는 가치를 상상하고, 구현하는 데 석회와 장인의 역할이 있었음을 보여주는데, 특히 무덤 조성에 쓰이는 삼물 석회와 일반 석회의 차이를 살핀 것이 세심하다. 다른 석회의 경우 그 접착력을 조종하기 위해 석회, 세사, 황토의 비율이 변화를 보였다면, 삼물회는 석회3:세사1:황토1의 비율이 거의 일정했다고 한다. 장인들은 『가례』에 수록된 이 비율을 유지하기 위해 느릅나무즙으로 접착력을 강화하는 “혁신”을 제공함으로써 망자에 대한 지극한 예라는 가치를 회격릉 공간 속에 실현했고, 새로운 전거를 만들었다.

정일태와 허대영은 우선 기록된 지식이 없는 것이 관련 지식이 없거나, 그에 대한 체계적 전수가 없는 것은 아님을 밝히는 데 사료에 대한 미세한 감각을 발휘했다. 조선에는 『무예제보』 이전에 무예에 대한 서적은 없었지만, 『경국대전』에는 무인을 선발하는 상당히 분명한 기준이 적시되어 있었다. “말을 타고 25보의 거리에 떨어져 있는 3개의 추인(芻人)을 15척 5촌의 창으로 적중시키는데, 그 사이사이에 ‘세를 갖추었을 때만 쓴다[用勢具者]’”라는 규정이다. 무예인들이 몸으로 전수해 온 체화된 “세(勢)”가 기준으로 작동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한 『무예제보』와 『무예도보통지』가 3차원 공간에 움직이는 몸으로 구현되는 지식을 2차원의 종이로 옮기는 전략을 도상학적으로 분석했다. 동작의 방향성이나 간격을 드러내는 도상적 장치를 보여준 것이다.

최수정은 여름에 얼음을 이용하는, 조선시대에는 불가능할 것 같은 생쪽 염법이 조선 후기에 주된 남염법으로 실행된 것을 면밀한 문헌 검토를 통해 드러냈다. 옷감 염색에 필요한 얼음이 오랜 부서간 알력 끝에 끝내 서빙고에 할당되고, 이것이 『대전통편(大典通編, 1786)』에 “남염빙(藍染氷)”이라는 항목으로 실리는 협상 과정을 살핀 것이다. 왕실과 국가의 얼음 관리 규정을 바꾼 제도적 변화를 드러내면서 동시에 새로운 말의 출현에 주목한 어원학적 고찰로 결정적 변화의 순간을 포착했다.

오유빈 역시 순조 대 대조전 복원 과정을 담고 있는 『창덕궁영건도감의궤(昌德宮營建都監儀軌)』의 내용을 샅샅이 살펴서 부서간에 오간 문서, 공사 계획과 일정, 내역의 차이를 드러냈다. 창덕궁 대조전에 대한 가장 믿을 만한 기록인 『창덕궁의궤』는 대조전을 45칸으로 기록했고, 대조전 완공을 성공으로 기록했다. 실제 수급된 나무가 45칸을 떠받칠 길이 30자, 밑동 3자의 규격에 맞지 않음을 추적한 오유빈은 이 성공의 기록을 교차 검증한다. 고종 대 이후 실측한 기록과 지도가 확인해 준 대조전의 크기는 나무의 규격에 따라 줄어든 36칸이다.

정쩌싱은 화훼에 대한 서간, 필기류, 시문, 정원 관람기와 연행기 등 조선 후기 화훼 취미를 반영하는 방대한 문헌을 샅샅이 찾아내고, 정원 관람을 함께한 인물과 연행기 기록의 변화까지 살폈다. 선행연구가 검토했던 수선화의 도입과 재배 지식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연결고리를 검토함으로써 수선화 유행의 단절, 중단 등으로 논의된 문헌의 공백을 조선 후기 화훼와 그 지식 교류의 특성으로 포착했다. “매우 유한한 관계망” 속에서 분산된 유통이 이뤄지고 이어지는 양상을 드러낸 것이다.

문헌의 행간을 살피는 이들의 방법적 실천은 유구한 역사학적 전통을 더 세심하게 체화한 것일 뿐이고, 많은 역사 논저에서 잘 실행되어 온 것이다. 이들이 참고한 브루노 라투르의 방법론적 실천이 역사적 방법론도 차용했기 때문일까? 민속지 혹은 인류학적 분석으로 시작된 그와 스티브 울가의 『실험실 생활』은 4장에서 “사실의 미세처리(microprocessing of facts)”를 제목으로 내걸고, 실험실의 다양한 구성원이 생산한 방대한 자료가 새로운 과학적 사실을 생산해 내는 과정을 “역사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었다. 자료 위의 하나의 단어와 수치도, 자료와 자료 사이의 공백과 차이도 모두 중요한 사실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검토해 가는, 특집 저자들이 실천한 방법이다.6

2. 물질·사상·사회·생태의 얽힌 맥락 따라가기

모든 것이 불확실해 보이는 현재와 비교해, 과거는 안정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역사 속의 구성원이 사는 과거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들도 모든 일이 어지럽게 일어나는 당대를 살고 있다. 역사에 중요한 맥락 역시, 당대인이라 해서 전체를 알 수도 없고, 모두에게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지도 않는다. 역사적 맥락에는 또한 여러 요소가 있게 마련이다. 사상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환경적, 생태적, 기술적 맥락 등등이다. 이들은 이 맥락들이 복잡하게 얽혀가며 형성, 변화되는 과정을 추적함으로써 자신들이 택한 주인공의 역할을 드러냈다.

안소희는 사상적 맥락에서 시작했다. “망자의 마지막에 예를 다하고 오래전 돌아가신 분을 정성껏 추모한다면 사람들의 덕이 두터워질 것이다”라는 유교적 가치는 『가례』에 상례의 절차와 무덤의 형식에 대한 구체적 지침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가례』에 등장한 회격릉이 조선 초부터 왕릉에 구현되지는 않았다. 안소희는 실제 태조 대부터 이어진 석실과 회격릉 사이의 논쟁을 따라간다. 『가례』가 석회를 쓰면 돌처럼 단단해진다고 한 것은 돌의 물성이 이상적이라는 해석이 힘을 얻는 논리가 될 수 있었다. 이 사상적으로 견고할 수 있는 맥락은 무덤을 만든 돌이 일으키는 습기로 인한 배수의 필요, 적절한 크기와 모양의 돌을 찾아내는 어려움, 그 돌을 무덤까지 나르는 과정에 다치고, 힘들어하는 백성들과 만나며 흔들린다. 『가례』가 인정한 회격릉은 돌이 상징하는 가치가 생태적, 기술적, 물질적, 사회적 맥락에 얽히며 조금씩 조정되는 지난한 논의 끝에 예종 대에 자리 잡는다. 삼물회와 함께한 기술적 상상력이 힘을 실었다.

정일태와 허대영은 무예지식의 활자화 과정을 살피면서 선조와 정조가 그 지식을 편찬하고자 했던 군사적, 정치적 맥락이 그 지식을 수행하고 전달해 온 군인들의 신체, 군사훈련 및 시험제도 등과 얽혀서 구성되는 과정을 추적했다. 선조는 임진왜란을 통한 명군과의 접촉, 정조는 군영별로 차이를 보이게 된 무예전통을 계기로 편찬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명군의 우수한 무예를 전수받고, 군영의 무예를 체계적으로 표준화하겠다는 이들의 정치, 군사적 의지는 편찬자, 군인, 그들의 다양한 무기, 몸이 개입되는 수많은 협상을 거치고서야 활자로 구현된다. 명의 무예를 집성한 척계광(戚繼光)의 『기효신서(紀效新書)』에 “세”로 기록된 동작은 몸의 번역을 거쳐 그 세를 통합한 “보(譜)”로 『무예제보』에 수록되었고, 『무예도보통지』 편찬자들은 정조가 내준 100권 이상의 병법서 지식으로 무장하고서도 여러 날을 군영에 머물며 수많은 동작을 지켜봐야 했다. 어렵사리 활자화된 지식도 군영의 훈련, 시험체계와 맞는 만큼만 표준이 되었다. 이들이 『무예제보』와 『무예도보통지』 편찬 이후의 무예 실천, 제도의 변화까지 어느 정도 살핀 덕분에 무예서 편찬이라는 기획의 어려움과 특별함은 더 곱씹어볼 것이 되었다.

최수정은 남염빙이라는 하나의 단어가 법전에 실리기까지 생태, 물질, 기술, 정치, 행정, 지식적 맥락이 얽혀 만들어내는 다양한 논쟁을 추적했다. 쪽은 여름에 수확기에 이르고, 고온에 쉽게 상한다고 한다. 남염 기술에 얼음을 도입하게 한 특성이다. 하지만 빙고에 저장된 얼음은 여름 화기(火氣)를 제어하여 음양의 조화를 이루게 돕는 상징적 사물이자 『경국대전』에 실린 규칙에 따라 각 관사, 종친, 고위 관료에게 배급되는 귀한 자원이다. 장인에게 차례가 돌아가기는 힘들다. 그러나 생쪽 염법은 얼음의 정치적, 상징적, 제도적 맥락을 변화시키며 주된 남염법으로 남는다. 입장이 다른 부서 간의 오랜 논의 끝에 생쪽 염법을 지속시킬 법 규정까지 생긴 것이다. 얼음이 필요 없고, 나름의 장점도 있는 혼합염법을 외면하는 사대부 염색 지식 기록자들의 ‘합의’가 얽힌 결과이다.

오유빈은 정치, 재정, 환경, 생태, 군사, 임업, 수송 행정이 얽혀드는 창덕궁대조전 재건 과정을 추적했다. 가뭄이 이어져 민심이 흉흉하고 재정이 고갈된 상황에서 궁궐 공사는 정치적 부담이다. 이를 최소화하는 일은 누구 한 사람의 정치력에 달려 있지 않다. 고갈된 산림, 한강이나 바다로 나무를 수송할 수 있는 계절 조건, 장부에 기록되어 관리된 나무에 생겨난 구멍과 허약함, 30자 가까운 나무를 나루로 옮기는 노역자와 수송선의 확보 등, 제각각인 맥락이 어떻게든 맞아떨어져야 한다. 나름의 맥락에서 활동하고 협상하는 개개 구성원의 조우가 이뤄진 결과가 36칸 대조전의 “성공적” 완공이었다.

정쩌싱은 정원 유람을 조직하고, 시문과 편지를 나누는 인적 관계망이, 연행이라는 외교망, 희귀품종을 거래하는 상업망과 얽혀들며 화훼지식을 생산하고 확장하는 과정을 추적했다. 정치적 결속을 목적으로 하기도 하지만 당파를 넘기도 하는 정원 유람 시사(詩社)가 있고, 앞선 연행자의 방문지를 따라가는 연행기를 통한 직간접 교류가 있으며, 화훼 취미 유행에 한몫하는 재배업자와 판매상이 이어주는 관계가 있다. 이들은 화초와 그에 대한 지식을 나누며, 결속되고 확장된다. 지식의 전달이 실패하면 귀한 선물로 건네진 수선화는 꽃을 피우지 못하지만, 실패를 통해 지식 습득과 교류는 더 활발해진다. 화훼와 사람이 이어주는 연결망을 찬찬히 따라가며 중첩되는 만남 속에 사회적으로 생성, 복제, 변형, 확장, 소멸되는 지식을 살펴봄으로써, ‘식물학’도 ‘원예학’도 아닌 당대의 화훼 지식은 그대로, 생생하게 드러났다. 조선시대의 가장 방대하거나 체계적인 몇몇 “원예서”를 선정해서 그 지식을 개인의 지적 기획으로 분석하는 고전적 접근에서 볼 수 없던 지식 활동이 드러난 것이다.

라투르는 “‘일반적 생각들’은 건설될 수 있고, 그것은 철도를 건설하는 것보다 더 어렵지도, 덜 어렵지도 않다”고 했다. “‘탁자’라는 개념만으로 한 탁자에서 다른 탁자로 이동할 수는 없다. 이동하려면, 선로 변경자, 역무원, 회계원, 신호기 등 철도 체제를 유지하는 것만큼이나 비싼 연결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7 형성 중인 맥락을 따라간 이들의 연구는 실제로 망자에게 예를 다해야 한다거나, 무예를 전수한다는 생각이 사상적 배경이나 정치적 구상으로 거저 구현되지 않았음을 잘 보여준다. 손에도 푸른 물이 들 장인에게 귀한 얼음이 배당되는 일, 왕의 침전에 적합한 대들보를 확보하는 일, 수선화를 키우는 일도 모두 서로 생각이 다른 다양한 구성원이 어떻게 인가 복잡하고 비싼 각종 제도와 연결망을 건설해 줌으로써 가능해졌다.

3. 역사 속의 과학기술, 역사 속의 기지(機智)

이들의 연구는 조선시대에 대해 다양한 시사점을 준다. 이 글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과학기술적” 관심과 실천의 일상성이다. 과학사학계는 “한국사에도 과학이 있는가?”라는 오랜 질문을 시작으로 현대 과학기술 분과로 받아들여지는 물리학, 화공학, 식물학, 재료공학, 토목공학자 등을 찾을 수 없는 조선시대에 어떤 과학기술사를 할 것인지를 고민해 왔다.8 물론 서구 근대를 역사의 종착점으로 삼는 이 고민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함께 새로운 접근이 시도된 지도 오래되었다. 문헌 중심 역사학의 틀을 탈피하고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함께 펴낸 30권의 “한국의 과학과 문명” 시리즈는 특히 일상의 다양한 분야를 폭넓게 아울렀다. 하지만 특집 저자들이 선택한 특별한 주인공과 방법적 실천 덕분인지, 이들이 보여준 “과학기술”은 특히 당대의 삶과 가깝게 느껴진다.

이 역사 속 과학기술에 참여하는 것은 장인이나, 몸에서 몸으로 지식을 전하는 군인, 다양한 물질만이 아니다. 흔히 과학기술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여겨졌던 조정과 연행단의 고위 관료, 지방의 한미한 선비가 모두 일상의 과학기술에 상당히 관심을 가졌던 점도 이들의 연구를 통해 볼 수 있다. 성실하게 글을 남긴 이들이 다수 식자를 대변할지는 모르지만, 이들은 무예하는 몸과 석회, 돌, 느릅나무즙, 얼음, 쪽풀, 소나무, 목재를 놓고 몇 날 며칠, 수십 년을 두고, 이렇게 저렇게 관찰하고 사실을 따졌다. 연행기에서 읽은 꽃가게에 대한 묘사를 맘에 두고 있던 선비는 그것을 꼼꼼하게 확인하고, 새로운 탐색과 관찰을 통해 집단 경험을 확대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면, 그랬겠구나 싶다. 상례는 피해 갈 수 없는 일이고, 그것을 가벼이 여기는 문화는 듣지 못했다. 조선에서는 더욱 중했다. 돌과 석회가 어떤지, 모래를 어느 정도 섞어야 하는지, 느릅나무즙이 어떤 효과를 내는지 시도해 보고, 기억하고, 기록해서 전하는 것이 당연하다. 아쉽게도 군대를 무시할 수 있는 왕은 없다. 군인의 자세가 대단치 않아 보여도, 오랜 숙련 없이 흉내 낼 수는 없다. 당대인들은 “묘리는 장수가 된 자라도 반드시 몸소 배워야 그 오묘함을 알게 되며, 반드시 세월이 쌓여야 그 정밀함을 얻을 수 있다. 잠깐 말하는 것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니 숨기려는 것이 아니다. 실로 잠깐 이야기해서는 말하기 어렵고도 어렵다”는 말을 깊이 수긍한 듯하다. 말뭉치가 빠르게 쏟아내는 문자 지식에 쉽게 압도당하는 현대인들과 다르다. 대조전을 짓는 데 비용이 제일 큰 것이 목재였다고 한다. 인구가 증가하며 산림이 고갈되자, 장부를 만들어 크기를 기록해 가며 나무를 관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남염이나 식물 지식을 기록한 유학자들도 일상에서 접하는 이런 지식에 대해 뭔가 살뜰하다. 책상머리를 잘 떠나지 않았을 듯한 이들이, 남염 이야기는 짧아도 직접 들은 듯 썼고, 수선화나 매화에 대한 것도 모두 돌보고, 찬탄하고, 아쉬워한 것을 절절히 기록했다. 이것도 대개 자연을 “이용”하기 위한 관심이고, 공부였지만, 이 일상 곳곳에 스며있는 자연과의 관계에서 석회, 돌, 몸, 느릅나무, 얼음, 소나무, 수선화의 목소리는 더 크게 들리는 것도 같다.

안소희는 자신이 유학자라는 주인공 대신 지금까지 외면받아 온 돌, 석회까지 주인공으로 택한 이유를 “현실이 악역”이 되는 서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유학자가 주인공이 되는 서사에서 현실은 흔히 망자에 대한 예를 다하려는 유학자의 이상을 굴절, 좌절시키는 역을 맡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학자가 관계 맺는 현실 속의 다양한 구성원을 사회와 생태가 얽혀 있게 마련인 집합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면,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인간과 손잡고 사회생태적 연대를 이루어 뭔가를 해낸다. 유학자의 “생각”이 현실에 “건설”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선로 변경자, 새로운 가능성을 알려 주는 신호기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나는 일상을 떠받쳐 온 다양한 구성원과 사회생태적으로 얽혀서 함께 해내는 뭔가를 “기지(機智)”라고 불러 왔다. 기지는 궁지에 몰려 눈치 빠르게 발휘하는 재치라는 뜻으로 흔히 쓰이지만, “기(機)”에는 기미, 기회, 틀, 기계, 위기라는 다양한 뜻이 있고 기지는 지속적인 주변 환경의 변화와 사물, 도구, 기계의 기미에 모두 밀착된 실천적 지식일 수 있다. 인간 혼자, 기계 혼자서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닥나무의 힘에 기대어 닥종이를 조선 후기 수출산업으로까지 진화시킨 닥종이 장인들의 다양한 실천적 지식에 기지란 이름을 처음 붙였다. 천년 한지의 명성을 얻은 내구성 좋은 종이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닥나무를 재배하는 유민들과 함께 이동하며, 새로운 산업적 가능성을 만들어낸 기지였다. 정해진 것 없는 현실 속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기도 하는 이러한 기지는 당연히 조선 혹은 한국에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의 도자기 공장, 부천의 반도체 공장과 타이완의 농기구 제작소, 청대 궁중의 옥공예 작업장에도 모두 스며있었다.9 이번 다섯 편의 논문은 문헌의 행간을 살피며 복잡하게 얽히는 맥락을 따라가면, 조선 사회에서 이뤄졌던 다양한 과학기술적 실천, 창의적 기지가 더 드러날 것임을 보여준다.

4. 나가며: 사소한 것의 의미를 믿는 역사

말도 근근이 만드는 역사가가 ‘물질적 전회’를 내세우는 것은 생각이 물질보다 덜 중요하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물질도 사람처럼 “행위성(agency)”을 가진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도 아니다. 그런 추상적 논의는 다른 이들이 맡아줄 것이다. 이런 논의를 자의적으로 가져다 쓰는 이유는 역사의 현실을 풀어내는 우리의 말을 더 잘 만드는 데 이 물질적 감수성이 필요해 보여서이다. 사물에 대한 이론적 논의는 흔히 자유의지가 있는 사물, 생각하는 사물, 고통을 느끼는 사물, 운동할 수 있는 사물, 혹은 그렇지 않은 사물 등의 등급을 나누지만, 일상의 우리는 이런 평가와 무관하게 다양한 사물을 존중해 왔다. 나를 반기며 웃는 얼굴을 하는 강아지를 더 사랑하게 되긴 하지만, 생각이나 감정을 느끼지 않을 듯한 벽조차도 우리는 존중한다. 생각이나 감정을 느끼지 못하니, 벽은 무시하자며 그것에 돌진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석회나 느릅나무즙이 새로운 예법의 전거를 만들고, 움직이는 몸이나 얼음이 시험 규정과 법률 조항을 만들고, 나무가 궁궐의 설계를 바꾸고, 화초가 정치적 결속을 만들게도 넘어서게도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물에 대한 존중은 생득적으로, 경험적으로 체화된 암묵지의 영역이다. 의식적 생각의 영역, 말의 영역에 충분히 들어온 감수성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물을 낮춰 보는 듯한 말을 해 왔고, 사물을 깊이 의식하지 않고 역사를 써왔다. 이렇게 사물에 대한 말이 발달하지 않아서, 우리는 한 번도 벽을 무시하지 않는 실천과 달리, 우리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물의 얽힌 변화를 무시하거나, 모른척하며 살기도 한다. 임계점에 다다른 기후변화, 일상에 들어온 인공지능 기술의 사회생태적 영향에 대한 논의가 희미한 것이 그렇다. 나는 사물의 미시적 맥락을 충실히 따랐던 이들의 연구가 우리의 손을 벗어난 듯한 이런 과학기술 시대의 변화를 대하는 데도 시사점을 주었으면 좋겠다. 이들처럼 의식적으로 사물과의 대화에 나설 때 과학기술 혹은 자연이라 불리는 수많은 것들이 느닷없는 악역을 맡을까? 어떤 멋진 생각도, 어떤 힘센 기계도 홀로 힘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역사 속의 사물과도 대화하며 현실의 행간을 읽어가면 생각과 기차를 좋은 길로 보낼 반듯한 침목 하나를 어디선가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소한 것의 의미를 더 밝히기 위해 가려졌던 역사의 구성원을 드러낸 이들의 연구가 지속되길 기대해 본다. 각각의 미시적 맥락이 조선 사회의 더 넓은 사회생태적 맥락, 조선 사회와 소통한 다른 지역의 변화와도 연결되어 간다면 이들이 조선 사회와 그 일상의 과학기술에 대해 준 신선한 통찰은 더 큰 힘을 얻을 것이고, 사물과 우리의 뗄 수 없는 관계에 대한 이해도 깊어질 것이다. 돌고, 돌고, 도는 물질적 전회가 한국사학계에서도, 과학사학계에서도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각주

  1. 1안소희, “워크샵 계획서: 물질적 전환과 조선시대사.”
  2. 2브루노 라투르 외, 홍성욱 편, 『인간, 사물, 동맹』 (이음, 2018); Pamela H. Smith, The Body of the Artisan: Art and Experience in the Scientific Revolution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4); Igor Kopytoff, “The Cultural Biography of Things: Commoditization as Process,” The Social Life of Things: Commodities in Cultural Perspectiv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6), 64-91.
  3. 3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도 역사 속의 과학으로 조명한 쿤의 연구를 뒤이어, “역사 속의 과학기술”을 밝히는 것은 과학사가의 중요한 일이었다. Thomas Kuhn, 김명자, 홍성욱 옮김, 『과학혁명의 구조』, (까치, 2013); 김영식 편, 『역사 속의 과학』 (창작과 비평, 1982).
  4. 4Lynn White Jr., Medieval Technology and Social Change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62), 39.
  5. 5White, 앞의 책, v. 이두갑, 전치형, "인간의 경계: 기술결정론과 기술사회에서의 인간," 『한국과학사학회지』 23:2, (2001), 157-179, 166.
  6. 6Bruno Latour and Steve Woolgar, Laboratory Life: The Social Construction of Scientific Facts (Beverly Hills: Sage Publications, 1979), 151.
  7. 7Bruno Latour, The Pasteurization of France, tr. Alan Sheridan and John Law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88), 220.
  8. 8박성래, 『한국사에도 과학이 있는가』 (교보문고, 1998).
  9. 9이정, 『장인과 닥나무가 함께 만든 역사, 조선의 과학기술사』 (푸른역사, 2023); Lee, Jung, "Kiji, kichi, jizhi: Resourceful creativity as vernacular universals of technoscience," History of Science, forthcom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