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Robert Chambers and His Evolutionary Ideas
Department of History, Inha University
Published: January 1988 · Vol. 10 · pp. 88-100
Full Text
Abstract
1844년 빅토리아시대의 영국에는 生物의 진화에 관한 저서 「창조의 자연사의 흔적」(Vestiges of the Natural History of Creation)이 익명으로 출판되었다. 저자 체임버스는 당대의 사상적 주관심사였으며, 우주의 진화를 설명하는 새로운 가설로서 등장하고 있던 星雲說(Nebular Hypothesis)을 그의 진화론의 전제로 하고 있다. 이 자연계에는 단 하나의 자연법, 즉 발전의 법칙(law of development)이 지배하는데 이것에 의해서 생물계나 무생물계나 非異質的인 시작으로부터 점증하는 복잡성의 理想을 향하여 진보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운설에 의하면 현대의 力勁的 세계 하에서 운행되고 있는 태양계의 별들은 원초적인 가스와 같은 안개덩어리로부터 진화해 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치 비생물적인 우주가 일관된 법칙에 종속됨으로써 오늘에 이른 것처럼 생물계도 마찬가지로 같은 법칙을 따라서 진화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생물의 진화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체임버스에 의하면 비록 일반적으로 하나의 種은 같은 種을 낳는 것이나, 때로는 그렇지가 않은 현상이 일어난다. 따라서 어떤 때는 전혀 새로운 種의 생물이 단번에 한 種의 자궁으로부터, 예를 들이 1억 2천제의 확률적 出産에 의해, 태어난다는 것이다. 이런 外的인 환경의 변화가 있을 때, 한 생명의 자궁 내에서의 胚로서의 존재 기간이 연장됨으로써, 그 생명체는 한단계 높은 새로운 생물의 胚로 발전하게 됨으로써, 새로운 種의 탄생이 이루어져 진화가 일어진다는 것이다. 체임버스는 그의 이론을 뉴튼계계에 비교하고 있다. 실제로 빅토리아시대를 통하여 과학자들은, 법칙을 통하여 자연을 설명하고 그 법칙이란 가능한 한 뉴튼물리학, 특히 1830년대의 뉴튼天文學과 같아야 한다는 생각에 지배되고 있었다. 마치 重力에 의해 무생물계가 통제되듯이 생물의 세계는 발전의 법칙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체임버스도 이러한 그 시대의 지배적 개념이었던 "법칙을 통한 설명"을 시도했던 것이다. 神이 수많은 생물의 各種들을 지질학적 기록에 나타나는 각각의 시대에 하나하나 만들어 냈다는 것은 신의 능력을 축소하고 신을 또한 너무나 擬人化하는 것이라고 체임버스는 생각했다. 그것보다는 창조주가 하나의 자연법을 설정하여 자연에 작용케 함으로써 하나의 미천한 생명체로부터 생물계가 발전하도록 하는 것이 훨씬 더 신을 고귀하게 한다는 것이다. 각 지층에 나타나는 化石기록은 체임버스의 진화론의 또 하나의 주요한 뒷받침이었다. 化石기록이 보여 주는 명백한 진보(progression)——단순한 하급동물이 최초로 나타나고 점차적으로 고등동물의 出現에 이르고 최후로 人間이 나타나는——는, 비록 이것이 창조론자들에게 있어서 생물 하나하나에 대한 신의 창조의 좋은 증거이기도 하였지만, 체임버스에게 있어서는, 발전의 법칙에 의한 생물진화의 더 없는 근거였다. 체임버스의 주장에 대한 당대의 과학·종교계의 반응이란 냉혹했다. 많은 저명한 빅토리아인들은 생생하고 원색적인 감정으로 Vestiges를 비난했다. 과학자는 Vestiges가 사실(facts)이 결여되어 있음을 들어 배척했다. 실제로 발전의 법칙의 萬有性이나 胚의 변화에 의한 진화 등의 그의 가설은 수집된 데이터로부터 추출된 것은 아니었다. 그 대신에 그는 이미 만들어진 가설을 맞추기 위해 사실들을 수집했다. 종교적인 사람들은 진화론이 제시한 인간의 특수한 지위에 대한 위협에 크게 당황하고 분노했다. 그러나 종교·과학계의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Vestiges는 일반대중으로부터는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1860년 경에 이르러 Vestiges는 20,000부 이상이 팔렸고 11판을 거듭했다. 아마도 Vestiges의 의미란 그것 자체의 과학적 가치에 있다기보다는 진화사상을 대중화했다는 그 역할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비록 Vestiges가 사실 해석의 오류나 근거없는 一般化의 잘못은 있었으나, 대중은 그런 것에 유의하기보다는 우주 전체에 적용할 수 있는 발전의 가설이라는 사상이 더욱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이 저서의 성공은 이 시대 사람들의 진화에 대한 깊은 관심을 반영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1840년대의 영국에는 새로운 과학사상과 전통적인 관념과의 사이에 미묘한 투쟁의 場이 있었다. Vestiges는 이 상쟁을 노골적으로 표면화함으로써 두 사상체계 사이에 좀더 솔직하고 공개적인 숙고를 요구했다. 생물의 진화에 관한 토론은 더 이상 私的인 과학적 토론이 아니라 대중 앞에 던져진 불타는 질문이었다. 그 대다수의 판매부수는 일반대중이 Vestiges의 주제를 그들의 종교적 입장에 관계없이 그럴듯한 것으로 명백히 받아들였음을 보여 준다. Vestiges의 효과는 빅토리아시대에 이미 제시된 진화사상의 宿舍를 가속시키는 것이었다. 결국 체임버스는 진화사상을 大衆化함으로써 다윈을 위해 길을 닦았다고 하겠다. 진짜 이유야 어디에 있었든 간에, 1844년에 체임버스가 Vestiges를 출판했을 때에는 진문적 과학자사회의 누구도 그의 중심논제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1859년에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판했을 때에는 생물의 기원에 관심을 가진 과학자들은 급속히 진화사상으로 改宗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