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Western Studies and Confucian Responses in 18th Century Korea
Department of History, Keimyung University
Published: January 1987 · Vol. 9 · pp. 81-94
Full Text
Abstract
유럽에서 발달한 근대문명이 압도적인 기세로 東洋에 진출하는 것은 19세기 중엽 이후의 일이다. 이에 앞서 대략 16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2세기 남짓한 기간에 걸쳐 동서간의 문화교류는 대체로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였는데, 이 단계를 대표한 것이 예수회 선교사들로서, 이들은 그 이전에 유례가 없었던 체계적이고도 지속적인 방법으로 서양문명의 여러 측면, 특히 기독교와 과학기술을 동양인들에게 소개했다. 日本과 中國에서 16세기 후반과 17세기 박두에 각각 예수회의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된 것에 비하여 朝鮮의 경우는 서양문명과의 접촉이 더 늦고, 너 범위가 좁고, 그리고 간접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中國 使行을 통해 예수회 계통의 책들이 朝鮮의 일부 지식인들에게 전해지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초엽의 일이었으나 17세기를 통해 이들 서적의 내용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가 이루어진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18세기에 들어와서야 李瀷(1681—1763)이 및 가치 제자에 就文을 쓰고 慣後期(1702—1761)이 『西學辨』을 짓는 등 西學에 대한 차원높은 연구가 나타나지만, 아직도 좁은 범위의 사람들에 의한 개인적인 연구의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正祖朝(1776—1800)에 들어오면 西學이 비로소 집단적인 운동의 성격을 띠고 전개되기 시작하는데, 그 두드리진 호응의 하나는 "利用厚生"을 제창한 北學派의 학자들이 서양의 科學·技術에 깊은 관심을 보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從世致用"을 제창한 畿湖學派의 일부 소장 학자들이 天主敎 신앙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이 가운데 北學派의 경우는 집단운동으로서의 성격이 깊게 지속하지 못하지만 宗敎로서의 西學운동은 여러 가지 고비를 넘기면서 開港期까지 그 흐름이 계속된다. 따라서 보다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이 종교운동의 방향으로 모여졌지만, 그 대부분은 운동의 추이를 신앙심의 성장이라는 기준에 의해서만 고찰해 왔다. 최근에 이르러서야 이 운동의 출립이 당시에 가졌던 정치적·문화적·사회적 배경과 의미를 신질적으로 추구하는 연구가 제출되기 시작하였다. 또 한 가치 지금까지의 연구에서 아쉬웠던 결은 中國의 西學界와의 연관이 충분히 세밀하게 검토되지 못한 것이다. 朝鮮西學의 발달이 비록 자주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더라도 그 내용은 전적으로 中國의 西學 뿐에서 유입된 서적에 근거를 두고 있었으며, 또 中國의 西學界가 17세기를 통해 祖上祭祀問題 등 중대한 변화를 겪고 있었으므로 그 변화가 朝鮮의 西學에도 상당한 작용을 했으리라는 개연성이 엄밀히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