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On the Origin of the Royal Society of London
Department of History, Inha University
Published: January 1987 · Vol. 9 · pp. 69-80
Full Text
Abstract
런던王立學會가 형성되어간 과정과 또한 이 學會의 창립의 철학적 견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의 상반되고 혼동을 가져오는 증거들이 발견된다. 이미 17세기에 이 학회의 기원에 대한 다른 의견들이 있었으며, 이 현상은 금일에 이르기까지 계속하여 존속하고 있다. 두 개의 相爭하는 說이 있다. 옥스포드假說에 의하면, 1648년에 시작하였고 1650년대에 계속되었던 옥스포드에서의 一連의 미팅들을 통하여 학회의 기원이 이루어졌다는 것이고, 런던가설은 王立학회의 선구자가 1645년이나 혹은 그 조금前에 런던에서 실험과학을 장려하기 위하여 모인 지식인들의 비공식모임체였다고 한다. 두 說은 학회의 철학적 성격에 대하여도 그들에 결부된 틀린 주장을 제시하고 있다. Thomas Sprat(1635-1713)에 의해서 1667년에 제시된 옥스포드기원설은 11년후에 John Wallis(1616-1703)에 의해서 수정된다. 그에 의하면 Sprat이 말한 Oxford미팅들은 1645년경에 런던에서의 다른 모임들에 의하여 先行되었으며, 이 주장은 후세의 역사가들에 의해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져 왔던 것이다. 그런데 1967년에 학회의 기원과 철학에 관한 일대파문을 일으킨 주장이 Magery Purver에 의해서 제시되었다. Purver에 의하면, Sprat이 런던그룹을 학회의 선구자로서 인정하기를 거론한 것은 단순한 무시이거나 편견이 아니라는 것이다. 두 그룹은 개념적으로 또 질적으로 달랐는데 옥스포드그룹만이 진정한 베이컨주의자들의 모임이었다는 것이다. 학회의 진정한 철학적 기반은 베이컨주의뿐이다. 결국 Purver의 주장은 17세기 과학혁명의 완성에 있어서 Bacon主義의 절대적 영향력이 강조된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이 인식은 과연 타당한 것인가? 비록 과학추구의 방법에 대한 베이컨의 진술이 많은 과학자들을 인도한 것은 사실이나, 이는 과학혁명의 소시기를 통하여 이룩된 업적에 대한 부분적인 설명이상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청교도혁명의 기간(1649-1660) 동안에는 옥스포드 그룹 外에도 상호연관이 되어 있는 많은 비공식단체들이 증식하고 있었다. 그러한 많은 미팅들은 실험과학의 珍新性(novelty)에 자극되었으며 또한 실험과학의 발전을 위한 이상적 매개체였다. 최근에는 베이컨의 "새로운 과학"의 체계가 실려있는 그의 저서들의 권위에 대한 의문이 학자들에 의하여 제기되고 있다. 어쩌면 학회의 창설자들은 理想的인 과학자로서 베이컨보다는 하비, 갈릴레오, 데카르트, 가상디 등이 더 인상적이었을지 모르겠다. 런던그룹의 대부분의 멤버가 후에 옥스포드그룹의 멤버가 되었으며, 왕정복고후에 아직도 살아 있던 런던그룹의 멤버는 모두 王立學會의 회원이 되었다는 사실은 런던그룹이 진정한 Baconian이 아니었다는 논의에 반박이 되고 있다. 런던그룹, 옥스포드그룹 그리고 베이컨 哲學의 三者이외에도 학회의 탄생에 관련있는 여러 요소와 사상(idea)이 존재한다. 그들중의 몇몇을 이름들어 보면, Gresham College說, 外國人들의 기여, 소위 말하여지는 "Invisible College" 그리고 Merton의 청교도命題 등이 있다. 단 하나의 그룹이 단 하나의 과학철학을 가지고 런던王立학회의 선구자가 되었다는 의견은 틀린 것 같다. 왕립학회의 기원을 구성한 요소로서는 다른 장소와 시간속에서 다른 철학적 견지를 가지고 만난 많은 그룹들이 존재하였다.